■ 2019년 창세기 제 26 강 강득현

준비된 요셉,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


말씀 : 창세기 40:1-41:57
요절 : 창세기 41:41   HWP 다운로드     음성메시지     동영상메시지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우리나라 현 총리(이낙연-국회의원, 전남지사)를 포함하여 역대 총리들을 보면 현 총리도 그렇고 직전 총리(황교안, 법무부장관, 공안검사)도 그렇고 주로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출신이 많습니다. 소위 엘리트 출신들이 한 나라의 총리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애굽의 노예였고 죄수였던 요셉이 하루아침에 대제국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 즉 요셉을 가족들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애굽의 지도자로 세워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요셉을 엘리트 코스가 아닌 노예와 죄수라는 과정을 통해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을까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요셉은 어떤 사람으로 준비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람을 준비시키고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 어떤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하는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준비된 요셉(40:1-23)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갇힌 감옥에 어느 날 두 명의 특별한 죄수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그들이 애굽 왕에게 범죄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애굽 왕 바로는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었습니다(2,3). 4절을 보십시오.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하는 특별 임무를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하룻밤에 각기 다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5).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바로의 노여움을 사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것 같아 조마조마 하고 있었는데, 꿈까지 꾸고 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꿈의 내용을 해석할 수 없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었습니다(6). 요셉이 묻습니다. 7b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러자 그들이 대답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8a) 그러자 다시 요셉이 말합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8b) 여기서 볼 때 요셉은 그들을 섬기되 매우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요셉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섬길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됩니다. 또 요셉이 그들을 마음을 드려 섬긴다고 해서 당장 요셉에게 어떤 유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에게 맡겨진 죄수들을 마음을 다해 섬겼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비록 그의 신분은 죄수였지만 실제로는 두 관원장의 목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요셉은 감옥이라는, 희망이 없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자기에게 돌아오는 유익도 없고 장래에 대한 희망도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진 일과 맡겨진 사람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과 맡겨진 사람에 대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우 힘든 상황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이나 사람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사실 힘듭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요셉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했고 또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나가는 것 자체가 요셉의 목표였다면 당시 요셉이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요셉은 절망하고 자포자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의 힘든 생각, 어두움, 슬픔, 절망적인 생각 등을 극복하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길 내적 힘도 생겼습니다. 요셉이 문제 해결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즉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요셉은 어둠에 빠지지 않고 도리어 마음이 밝아지고 힘이 생겨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요셉이 옥에서 나가는 것과 자신의 문제 해결이 목표였다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을 때 요셉은 마음이 답답하고 더욱 깊은 어둠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면 당장 또는 빨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답답하고 어둠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또는 빨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목표로 추구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내면에 힘이 생겨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과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장 또는 빨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은 죄수라는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의 위치에서 죄수들을 섬기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목자훈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목자훈련을 통해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몸에 익혀 요셉은 후에 형들의 목자가 되고 애굽 사람들의 목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요셉을 보디발 집의 노예와 가정총무로서 이제는 옥에서 죄수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목자 훈련하셨습니다.
   
    요셉의 관심과 사랑, 확신에 신뢰감을 갖게 된 두 관원장은 자신들이 꾼 꿈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을 말합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그러자 요셉이 즉시 해석을 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한 마디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된다는 거예요. 14,15절을 보십시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셉은 자신이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복직이 되거든 바로에게 잘 말씀드려 자신을 감옥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자기도 요셉에게 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16b-17절을 보십시오.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요셉이 또 즉시 꿈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18,19) 20-22절을 보십시오. 요셉의 꿈 해석대로 사흘 후 바로의 생일에 두 사람이 바로 앞에 불려나가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려 죽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너무 바빠서 잠깐 잊었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술 맡은 관원장은 면회 한 번 오지 않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완전히 요셉을 잊은 것이지요. 그리하여 요셉은 감옥에서 나갈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요셉은 다시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 대한 실망과 섭섭한 마음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감옥에서 나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년 동안이나 더 요셉을 감옥에 두셨습니다. 이는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요셉이 하나님의 도구로서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을 때, 요셉은 사람에 대해 실망하는 마음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 받고 배신당하고 절망하는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입니다. 특히 내가 은혜 베풀고 내가 도움을 주고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는 것은 더욱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에게 철저하게 실망하고 절망할 때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오히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함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형들과 보디발, 보디발의 아내, 그리고 그가 도와준 술 맡은 관원장에게까지 철저히 실망하고 절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의존심이 생기고, 사람에게 매이게 되고, 상처받게 되고 실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 자립적이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능력 있는 삶,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결국 요셉은 감옥에서 죄수들을 섬기면서 사람을 섬기는 목자훈련을 받았고 또 그가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실망하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요셉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과 주위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통해 목자 훈련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도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요셉은 그가 옥에서 나갈 수 있을지 나갈 수 없을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했고 설령 옥에서 나간다 해도 언제 나갈지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매우 답답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다만 하나님을 믿고 현재 그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으나 다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두 관원장이 꿈을 꾸지 않고서도 한 사람은 복직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처형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왜 요셉이 먼저 감옥에 가게 하시고 두 관원장에게 꿈을 주시고 또 요셉에게 그것들을 해석하게 하신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요셉을 목자훈련하시고 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기근의 때에 야곱의 가족들과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요셉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요셉은 노예로서, 죄수로서 목자훈련을 받고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은 17세였지만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30세였습니다. 그 동안 요셉은 낮아져서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목자훈련을 받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어 갔습니다. 요셉은 장차 한 나라를 다스려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목자훈련, 믿음훈련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전에 먼저 사람을 훈련하시고 준비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우리가 훈련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특히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사람들의 목자요,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 예를 들어 사람 낚는 어부의 꿈,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꿈이 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감옥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요셉이 바로에게 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감옥에서 두 관원장을 만나 그들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두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요, 두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다면 꿈을 해석하지도 않았을 것이요, 꿈을 해석하지 않았다면 바로에게 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출신 노예요, 죄수인 요셉이 바로에게 나아가 일약 총리로 발탁될 것을 확률로 따진다면 아마 0에 가까울 것입니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가 우리나라 총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그를 감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관원장을 요셉이 있는 감옥으로 보내시고 그들에게 꿈을 주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그 꿈을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이 갇힌 감옥에 갇히게 된 것,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한 것, 그들이 하룻밤에 꿈을 꾸고 요셉이 그것을 해석한 것 등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물론 요셉은 자신이 죄수에서 총리가 될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신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인내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이 빨리 해결 되지 않고 어려움이 계속 되면 지치게 되고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 회의와 피곤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 대해 반발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포자기의 심정이 생기고 점점 하나님께 대한 소원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시험에 들어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사명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힘들다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 없는 사람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히10:38).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적어도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되거나 준비되지 못하고 신앙적으로 망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가장 힘들고 비천한 자리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요셉과 같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과 맡겨진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이런 요셉은 죄수들의 목자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셉에게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기회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요셉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감옥 생활이 힘들다고 불평이나 하며 적극적으로 사람을 섬기는 목자 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는 총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의 집의 가정 총무로 있을 때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나, 술 맡은 관원장에게 실망했을 때나 계속해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어두운 생각을 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처럼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현재 자기 위치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변함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어두운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우리가 목자요,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고, 이런 우리를 통해 중앙대 숙대 캠퍼스가 개척되고 제자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Ⅱ. 죄수에서 총리로(41:1-57)
    41:1을 보십시오. 만 이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감옥에서의 2년은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2년이면 형제들의 경우 요즘은 군복무 기간보다 더 긴 기간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감옥에서 나갈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요셉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둠이나 절망이 없고 늘 희망뿐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은 것이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 꿈의 내용은, 바로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깡마른)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잡아먹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장면에 너무 놀라 바로는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바로는 간밤에 왠지 불길한 꿈을 반복해서 꾸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음에 번민이 일어났습니다(8a). 그래서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8b).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이 2년 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는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했습니다(9-13). 14절을 보십시오.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불렀고 바로의 부름을 받은 요셉은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 앞에 섰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요셉에게 말합니다.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이때 요셉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말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바로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29-31절을 보십시오.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그리고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할 뿐 아니라 해결책까지도 제안했습니다. 33-36절을 보십시오. 그 해결책은 첫째,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는 것(33)이고 둘째는 일곱 해 풍년 동안에 모든 소출의 오분의 일을 저축하여 앞으로 올 흉년에 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34-36). 37절을 보십시오.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 곧 요셉이 제안한 대비책을 좋게 여겼습니다(37).
   
    38,39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감격하여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말합니다(38).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39)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이 충만한 사람, 세상 소원이 충만한 사람,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생각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는 즉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40,41절을 보십시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40) 바로가 또 요셉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41) 바로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바로는 그 자리에서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웠습니다(42,43). 이 모든 일이 일순간에 일어났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13년 전 요셉에게 주신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은 준비되었고 하나님은 꿈을 이루셨습니다.
   
    46-50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삼십 세에 총리가 되었습니다(46a). 그리고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았고 요셉은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해마다 오분의 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였습니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습니다(47-49). 50-52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여 첫 아들을 얻은 후 그의 장남의 이름을 “잊어버림” 이라는 뜻의 므낫세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었습니다(50,51). 52절을 보십시오. 차남의 이름을 “창성함” 이라는 뜻의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습니다(52). 지금까지 요셉의 삶은 한 마디로 고난과 수고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요셉이 억울하게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총리가 된 요셉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게 했던 보디발 여사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는 군대를 보내 자신을 애굽에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당장 잡아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으로 지난날의 모든 억울한 일들을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소화함으로 잊어버렸습니다(51).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을 크게 높이셨기 때문에 그의 모든 고난과 수고, 아버지 집 일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인생에서 당한 억울함을 어떻게 풀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다른 사람이 억울함을 풀라고 해도 풀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때 억울함을 풀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인생이 회복될 때 고난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수고에 대해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요셉은 노예로서 많은 수고를 하였고 죄수로서도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높이시고 그의 모든 수고에 대해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또 많은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고난을 잊게 하시고 우리의 수고를 다 갚아 주십니다. 그리고 그때 모든 고난과 억울한 일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을 잊게 하시고 우리의 수고를 갚아 주실 것을 믿음으로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어둠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꿈, 즉 요셉을 생명의 구원자로 쓰시는 것을 위해 요셉을 무려 13년 동안이나 훈련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요셉이 하루아침에 죄수에서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 13년 동안 하나님에 의해 훈련되고 준비된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까? 첫째, 요셉은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39).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 같지만 요셉은 13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일하면서 그리고 옥에서 옥의 죄수들과 옥중 제반 사무를 처리하면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으로 준비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서 7년 풍년을 잘 관리하여 7년 흉년을 대비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생명과 많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원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맡겨진 일과 사람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할 때 우리 역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으로 준비될 것입니다. 둘째, 요셉은 사람들의 목자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목자로 준비되었습니다. 요셉이 옥에서 죄수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고 섬기는 목자가 되었을 때 후에 형들과 온 애굽의 목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의 목자로 준비되는 사람만이 많은 사람의 목자요, 지도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먼저 한 사람의 목자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또 사랑하고 신뢰했던 형들에게 배반당하고, 충성해서 섬겼던 보디발의 집으로부터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그가 믿었던 술 맡은 관원장에게는 잊혀지면서 요셉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요셉은 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셋째, 요셉은 충성된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인생을 보면서 요셉을 만난 사람들은 그의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였지만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아 자기 소유를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39:4). 또 간수장도 옥중 죄수들과 제반 사무를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39:22). 바로도 요셉으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였습니다(41:41). 그리고 보디발이나 간수장이나 요셉에게 한 번 맡긴 것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요셉을 신뢰하였고 요셉은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만난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고 그 결과는 항상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는 요셉이 충성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런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같이 충성된 사람을 쓰십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3년 동안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노예와 죄수로서 충성된 자로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 양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보존하기 위해 ‘나’ 한 사람을 지금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으십시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비록 요셉처럼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절망하거나 어둠에 빠지지 말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 사람들의 목자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요, 충성된 사람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